오랜만에 올리는 블로그의 글이 이런 내용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슬퍼해야 할, 목놓아 통곡해야 할 이유는 분명한 것 같다. 가슴이 시리도록 분노한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다. 한국의 기독교가 '기득권'으로 남아있는 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달할 진정한 힘도, 명분도, 능력도 상실한 것이다. 세상이 세차게 뺨을 때리는 이 때, 닥치고 앉아 맞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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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되는 개신교 비판에는 이유가 있다. 정치와 권력과 재물에 눈이 먼 한국 주류 개신교의 모습은 이천년 전 예수를 못 박았던 사람들을 똑똑히 환기시킨다.
한국 주류 개신교가 미쳤다. 화장기 어린 은유가 아니다. 말 그대로 제 정신을 놓았다는 의미다. 배타적 태도에서 비롯된 해묵은 병리적 현상들과 별개로, 장로 출신 대통령 당선인을 정면에 내세운 최근 주류 교계의 행보는 누가 보더라도 성경 속 마귀 들린 자의 그것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문제는 눈을 띄우고 마귀를 쫓아줘야 할 믿음의 입술들이 바로 그 광기를 입에 문 주체라는 사실이다.
개신교 비판은 어제 오늘 밥상 국거리가 아니다. 최근에도 MBC의 시사프로그램이 거대 교회의 세습과 사유화, 과세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그때마다 무한반복된 메아리는 일부의 문제를 들어 전체를 호도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자정노력을 하고 있다는 변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어적 어휘구사는 은연중에 논점을 흐려놓는다. 바로 그 ‘일부 교회’가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주류 교회라는 맥락을 외면하는 것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기독교사회책임 등의 그룹과 대부분의 대형 교회가 여기 속한다. 부와 권력과 규모를 ‘신이 내려준 복’ 즈음으로 정당화하는 교회들이다. 교계는 주류를 일부라는 말로 어설프게 타자화하는 것보다 자정의 노력을 먼저 보여줘야 했다. 바뀐 건 없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개혁실천연대 등, 이른바 진보적 복음주의 그룹과 시민단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류 교회의 병폐는 나아질 기색이 없다. 오히려 이젠 노골적으로 정치 세력화를 향한 야심을 감추지 않는 형편이다. 구조적 문제라기보다, 그것이 종교적 신념인 탓에 더 고치기 힘들다.
그간 한국의 주류 개신교가 자행해온 부조리의 역사를 복기하는 일은 여간 괴로운 작업이 아니다. 그것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비뚤어진 논리, 가장 악의적인 이데올로기, 가장 첨예한 대립의 지점을 논하는 과정과 거의 대부분 겹쳐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개신교는 일찍부터 실질적인 국교로 기능해왔다. 교회가 광복 직후 반공주의, 자본주의를 종교적으로 교리화시킨 덕이다. 반공과 경제성장, 도덕적 정신무장의 당위성이 ‘신의 뜻’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다. 정권과 교회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전국의 교회에서 예배라는 이름으로 독재정권강화 정신교육이 이뤄졌다. 신이 그랬다는데 이길 장사 없다.
결국 주류 개신교는 돈과 성공을 향한 물욕과 결탁해 교세를 끊임없이 확장해 나갔다. 또한 특유의 배타성을 들어 믿음과 신념과 의견이 다른 자를 ‘틀린’ 자로 매도했는데, 이 같은 교리의 폭력성은 각종 일그러진 ‘주의’를 주의 이름으로 대중의 뇌리 깊숙이 심어 놓기에 이르렀다. 무의식을 점령했다. 상식으로 뚫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경직성,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완고함, 부조리를 세계의 원리로 쉽게 인정해버리는 무기력의 한숨 뒤에는 이런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작용하고 있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도를 펼쳐놓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따로 표기해보면 수많은 동그라미에 가려 한반도가 사라진다. 세계 최대 교회 50개 가운데 무려 23개를 보유한 초 강대 개신교 국가다. 엄청나게 성장했다. 좁은 땅에 성령이 역사하신 탓이라고 했지만, 실은 양적 성장을 향한 교회의 강력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오로지 높고 넓고 두터운 성전을 신의 이름으로 목 놓아 욕망했다. 이는 결국 과격한 세속화로 이어졌다. 미디어를 통해 밝혀졌듯이 대형 교회의 목사들은 각종 면세혜택을 누리면서 엄청난 부를 쌓고, 교회를 사유화하고, 세습하고, 신도의 돈을 횡령하고,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투기를 일삼았다. 소득세를 냈느냐 안 냈느냐를 가지고 말이 많은데, 냈다고 해도 애초 소득이 얼마고 그걸 어디 어떻게 썼는지 밝히지 않다 보니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가 없다. 모든 과정은 조금도 투명하지 않았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검은 돈이 헌금의 탈을 쓰고 교회와 개신교 사학재단을 경유해 암암리에 세탁됐다. 종교 헌금은 추적이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기업인데, 매우 반자본주의적인 토양 위의 기업인 셈이다.
부자 교회, 부자 목사에 대한 주류 개신교의 입장은 명료하다.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는 MBC의 비판적 보도를 의식한 듯 1월 27일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 예수 믿는 사람은 판자촌에 살아야 한다(는 말). 사탄이 하는 거짓말인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거부였고 이삭도 거부였고 야곱도 거부였습니다.” 주장의 수준을 따지기 이전에, 예수는 목수였다. 판자촌에 살라고 한 사람도 없었다. 이에 앞서 작년 1월에는 같은 자리에서 홍정식 목사(하베스트샬롬교회)가 “예수님은 가난하지 않았다. 예수님과 요셉은 가구를 잘 만들었다. 그래서 많이 팔렸을 것이다. 더군다나 치유 사역을 했기에 헌금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가난은 저주다. 부의 옷을 입어야 한다. 지금까지 순복음교회는 잘해왔다”는 눈물의 신앙 간증을 털어놓기도 했다. 사회적 약자를,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라는 원론적 가치마저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상식에 반한다. 하지만 교인들에게는 상식처럼 보인다. 신의 이름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부를 탐닉하고 십일조를 강요하는 주류 교회의 태도는, 그게 교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십일조 헌금만 제대로 내면 천국이 보장돼 있는데 그걸 제대로 못해 문제라고 말한다. 수입의 십분의 일을 교회에 헌납하는, 부자가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마법의 십일조는 오직 대한민국에만 잔존해 있는 헌금 양식이다. 십일조는 모세 시대의 율법이다. 종종 이단으로 취급되는 미국의 오순절 교회만 제외하면, 전 세계 모든 교회가 수백 년 전 근대화 과정을 거쳐 폐지한 제도다. 물론 십일조의 당위성은 교리적 해석의 몫이다. 문제는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이냐다. 최소한의 투명성과 땅의 규칙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그 내역은 당연히 신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돼야 마땅하다. 교회는 일부 목사의 소유물이 아니고, 헌금은 사적 재산으로 운용될 수 없다.
대한민국을 가로지르고 세로지르고 아래위로 나누는 이 거대한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현상과 사유의 지점은 따로 있다. 왜, 지금 이 시점이냐는 질문이다. 개신교가 사람들의 입에 유독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노무현 정권 들어서다. 한 손에 십자가를, 다른 손에 성조기를 든 사람들이 광장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극단적인 배타성과 친미주의에서 비롯된 교회 내부의 문제의식이 공적 발언의 형태로 세상 밖에 터져 나왔다. 정확히 말해, 그것은 징후였다. 주류 개신교회의 정치세력화가 급속하게 진전되면서 현실의 표피를 뚫고 도드라진 현상이다. 배경의 중심에는 교계 뉴라이트 세력인 이른바 기독교사회책임, 그리고 오랫동안 현실 정치에 미온적이었던 한기총이 있다. 이들은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비기독교인인 조갑제 월간조선 사장과 연대할 정도로) 상당히 급진적인 정치적 행보를 거듭해 왔다.
아닌 게 아니라 꽤 결실을 맺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대통령 인수위의 인수위원 24명 중 16.7 퍼센트인 4명이 소망교회 출신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출석하는 교회다. 특히 인수위원장, 기획조정위원, 경제1분과 간사 등을 비롯한 핵심층이 소망교회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정치세력화를 꿈꾸는 교계의 결실이라 할 만하다. 보다 최신 결과물은 사랑실천당(가칭)의 창당이다. 사랑실천당은 지난 1월 24일 발기인대회를 갖고 본격적인 창당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사회 일각에서 친북반미 사상을 가진 좌파들이 들고 일어나 난동을 부리며 사회를 혼란시키고 국가를 존폐의 위기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랑실천당의 전광훈 목사는 청교도영성훈련원에서 다음과 같은 일장연설을 내뱉었다. “사학법도 법이라고, 동성연애법도 법이라고 만들었냐. 국회의원 개새끼들, 왜 잠자는 목사들의 코털을 건드나. (중략) 국회를 100프로 점령하고 299명 다 채워서 예수 안 믿는 놈은 감방에서 5년, 얼마나 좋아. 내가 군사독재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생각이 보통 독재가 아니다. (중략) 끝까지 예수 안 믿는다고 하면 섬을 하나 정해놓고 중들을 집어넣어 헬리콥터로 컵라면만 떨어뜨리자. 예수도 안 믿는 인간들이 왜 살아.” 한기총의 신임 대표회장인 엄신형 목사(뉴라이트 계열이다)는 금란교회 초청회 자리에서 사랑실천당 창당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한기총이 앞장서서 목숨 걸겠다. 다음에는 예수 믿지 않으면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안 된다”고 말했다. 한기총의 대표회장 선거는 현재 금권, 비리 선거였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엄청난 배타성과 권력욕에서 비롯된 분열증이다. 주류 교회의 이 같은 폭력성은 무분별한 선교활동으로 이어져 아프간 피랍사태를 자초했고, “성경에 노조가 없다”는 궤변을 입에 문 이랜드의 비정규직 사태를 몰고와 국민적 공분을 샀다. 상황을 종합해보건대, 한국 주류 개신교가 용서와 화합, 사랑의 교회라는 증거는 어디서도 찾기 어렵다. 그보다는 입으로 사랑을 말하고 손으로 증오를 실천한다는 게 정확한 묘사다. 이들은 “사찰을 무너뜨려 달라”며 예수의 이름으로 비명인지 기도인지 모를 분노를 내뿜고(부산 BEXCO에서 열린 ‘Again 1907 in Busan’ 행사 중), 이라크 전쟁의 살풍경을 십자군 원정에 공공연히 비유하는가 하면, 인도네시아 쓰나미 피해를 이교도들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자초한 재해라고 주장하고(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가르치는 민중 교회를 “자정해야” 한다고 말한다(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상임총무 정재규 목사).
예수는 그의 말과 행동이 하늘에 머물러 있지 않고 땅 위에 굳건했기 때문에 칭송받았다. 그러나 한국의 주류 교회는 하늘의 논리를 빙자해 땅 위에 금으로 만든 바벨탑을 쌓고 있다. 예수의 정신은 실종됐다. 신약 속 예수는 도둑, 여자, 병들고 가난한 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살다가 정치범으로 몰려 죽었다. 그 예수가 지금 한국의 주류 교회를 목격한다면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예루살렘의 외적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압도돼 그 안의 제사장과 서기관들의 비리를 간파하지 못하는 제자를 보고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가 이 큰 건물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마가복음 13:1-2).”
이 땅의 주류 교회에 지금 당장 절실한 건 더 큰 성전도 정당도 보수정권도 아니다. 영적 두려움이다.
허지웅 (GQ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