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ist's weblog



애플 아이콘에 관련된 이야기 Mac

애플 아이콘에 관련된 이야기

애플사의 제품들을 사용하다보면, 세밀한 곳 까지 치밀하게 디자인하여 유저들의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를 극대화시키려하는 집착에 가까운 노력을 마주치게 되곤 합니다. OS X 이곳 저곳에도 그러한 흔적들이 숨겨져 있는데 매일 사용하는 Operating System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기에 눈치 채지가 쉽지가 않지요.  오늘은 그중에서 ‘아이콘’에 관련된 이야기들(주워 들었거나, 새삼 발견했거나 한)을 해보려고 합니다. 

1) OS X에서부터 도입된 512×512 픽셀의 아이콘들은 넓어진 면적을 최대한 활용하여 구석구석 더 세밀하게 디자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숨겨진 맛’을 들자면 TextEdit.app이 될 것입니다.  가로로 줄이 쳐 있는 종이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글들은, 평상시의 단추만한 크기의 아이콘 상태에서는 절대 읽혀질리가 없습니다만, Finder.app나 다른 툴로 최대 확대하여 보면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하게 됩니다.  “Dear Kate”로 시작하는 이 짧은 한 문단의 글은 사실, 1997년부터 애플컴퓨터사의 광고 문구로 사용되었던 “Think Different”의 시 한편입니다. 

친애하는 케이트, 

이 글은 ‘미친 넘’들에 관한 것이오. 부적응자. 반항아. 사고뭉치들. 사각틀의 둥근 쐐기(모양으로 맞지 않는 자)들.  사물을 다르게 보는 자들. 그들은 규칙을 별로 안좋아하지요. ‘현상유지’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당신은 그들을 인정할수도, 부정할수도, 인용할수도, 믿지않을수도 있습니다. 추켜 세우거나 까내리거나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단 한가지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지요. 그들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있거든요. 

그럼 이만, 

John Appleseed


2) iWork ’09 Keynote.app의 아이콘을 보면, 발표자 강대상 위에 붙박이 마이크와 발표자용 원고가 놓여있는데, 그 제목이 “Q4 2009”입니다.  Q는 Quarter를 나타내는 것이고, 2009는 해당 년도이겠지요.  회계년도(fiscal year)는 4개의 분기로 나뉘어 있는데 그 중 네번째 분기(Q4)는 해당 4분기뿐만 아니라 1년 전체의 회계보고를 모두 하게 되어 있어서 각 회사의 1년치 살림살이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중요한 ‘키노트’가 발표되는 시점이겠지요.  그 글 내용은 512픽셀 최대로 확대해 보아도 알 수가 없는데, MacRomors의 관련글을 살펴보니 뮤지컬 “Spring Awakening” 중에서 “The Bitch of Living”이라는 노래의 가사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3) Dictionary.app의 아이콘 역시 재미있는데 붉은 색 가죽 재질의 사전 그림에 라틴어로 보이는 글씨가 “Lorem Ipsum Dolor Sit Amet, Etiam”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무슨 뜻인가 하고 Wikipedia에게 물어보니, 보통 “Lorem Ipsum”이라고 줄여부르는 일종의 출판/편집 디자인 개념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편집물의 레이아웃을 잡아놓고 활자를 앉히게 될 때 어떤 “아우라”(^^)를 보이게 될 지 알아보기 위해 대충 아무 내용이나 집어넣게 되어 있는데 그 때 내용 자체가 생각을 빼앗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라틴어(처럼 보이는)로 된 의미없는 단어들을 채워넣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placeholder text” 또는 “filler text”라고 부르고 보통 아래와 같은 내용을 서양권에서는 집어넣는다고 합니다. 


Lorem ipsum dolor sit amet, consectetur adipisicing elit, sed do eiusmod tempor incididunt ut labore et dolore magna aliqua. Ut enim ad minim veniam, quis nostrud exercitation ullamco laboris nisi ut aliquip ex ea commodo consequat. Duis aute irure dolor in reprehenderit in voluptate velit esse cillum dolore eu fugiat nulla pariatur. Excepteur sint occaecat cupidatat non proident, sunt in culpa qui officia deserunt mollit anim id est laborum.


어쩐지 눈에 익었다고 했더니, Pages.app나 비슷한 어플 등의 Template을 선택하면 글자가 들어갈 자리에 뭔 뜻인지 모를 ‘filler’들이 들어차 있는 것이 생각나더군요. 






4) Mail.app 아이콘을 보게 되면 매 종류로 보이는 맹금류 사진 우표에 우체국측의 수납 직인이 찍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내용은 “HELLO FROM CUPERTINO, CA”로 되어 있는데, 물론 캘리포니아의 쿠퍼티노에 애플 본사 사옥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겠지요.  재미있는 것은, 우표의 톱니 모양이 모두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이고, 우체국 직인이 실제로 찍힌 것처럼 보이기 위해 우표의 두께와 우편봉투 사이의 간격까지도 계산하여 그래픽 처리를 했다는 것입니다.  저도 모르게 “애플… 이 놈들…”이라고 외치게 만드는 치밀함이랄까요.


5) “SHARED”항목에 나타나는 윈도우 컴퓨터 아이콘은, 코웃음을 치게 만드는 애플의 치기가 엿보이는 작품입니다.  악명높은 ‘블루스크린’으로 구형 CRT 모니터를 덮어버림으로써, 윈도우머신을 상대적으로 매우 초라해보이게 만들어 Shared항목에 나와있긴 하되, 그닥 접근해들어가고 싶지 않게 만드는 부작용을 제게 안겨주었습니다.  경고문의 내용은 늘 그렇듯 “CTRL+ALT+DEL”을 눌러 재부팅하라는 것이고, 저장하지 않은 내용은 모두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안내도 곁들였습니다. 


6) 사진 편집/관리툴인 Aperture의 아이콘은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라는 익숙한 문구와 더불어 이 렌즈가 ‘50미리 쩜사’임을 알게합니다.  1:1.4의 밝기를 제공하는 표준 단렌즈인 50미리 제품군의 가격은 무시할 수 없을만큼 셉니다만, 실내에서의 인물 촬영을 위한 필수품이라 아니할 수 없겠지요.  제품의 이름을 보통명사에서 잘도 차용해서 갖다 쓰는 애플 제품의 작명센스와 더불어, 최대 노출(aperture)을 아이콘에 표시함으로 제품 특성을 바로 직감하게 하는 아이콘 제작 센스도 높이 사게 되는 순간입니다.  



7) Numbers의 아이콘 또한 제품 특성을 바로 알 수 있게 하는 직관성 높은 작품입니다. 확대해서 보았을 때의 디테일은 참 대단한데, 스프레드 쉬트 지면 위에 3D로 치솟아 있는 막대기들에 반사 처리까지 되어 있는 것을 보십시오. 애플… 이 넘들… 



8) 마지막으로 ‘주소록’ 앱의 황금빛 아이콘과 그에 맞먹는 사용자주문 제작된 울트라 럭셔리 명품 주소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루이뷔똥 주소록 안에는 웬지 온갖 저명인사 (제게는… 소녀시대?)들의 셀폰번호들이 들어있을것만 같은 착각(환상)이 듭니다.  줘도 걸지도 못하는 중년 아자쒸의 넋두리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이상의 글은 각종 개인블로그와 포럼 등에서 줏어들은 것을 아무 동의없이 가져다 쓴 것입니다.  웃자고 썼는데 죽자고 달려드시면, 마~~이 당황합니다.  근거나 해석 가운데 오류를 발견하시면, 가까운 군부대나 경찰서, 민방위대에 신고해주세요. 




잠이 늘었어 Books & media

영화를 보고 싶어 졌어 

친구가 보고 싶어 졌어 
거울 속 날 피하지 않게 됐어 
잠이 늘었어


커피의 향기를 즐기며 
어여쁜 여인에 반하고 
멋있게 날 꾸며 보고 싶어져 
웃음이 늘어


운동이 좋아 아침을 기다려 
가능하면 밥은 거르지 않으려 해 
너의 사진에 무표정 해 졌어 
슬프지 않은 내 모습이 보여


커피의 향기를 즐기며 
어여쁜 여인에 반하고 
멋있게 날 꾸며 보고 싶어져 
웃음이 늘어


음악이 좋아 함께 듣던 노래도 
처음 만난 그 날도 무심히 지나가 
요긴하다며 너의 선물도 써 
슬프지 않은 내 모습이 보여


너의 사진에 무표정 해 졌어 
슬프지 않은 내 모습이 보여


운동이 좋아 아침을 기다려 
가능하면 밥은 거르지 않으려 해 
너의 사진에 무표정 해 졌어 
슬프지 않은 내 모습이 보여 
슬프지 않은 내 모습이 보여


꿈속에선 늘 외롭다 Home
























가끔씩 꿈을 꾼다.  꿈 속에선 늘 외롭다.  
꿈 속에선 아내가 없다.  꿈 속에선 아이들이 없다. 

가끔씩 꿈을 꾼다.  꿈 속에선 늘 열 네 살이다. 
사람은 많으나 친구가 없다.  꿈이지만 외롭다.  

오랜 가족의 굴레다.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기억이 바뀌어도 '사실'은 변함없다.  

문득, '넌 잘 살고 있는거니?' 하며 묻는다.  자신이 없다. 

꿈속에선 못된 기억들이 한꺼번에 달려든다. 
자비가 없다.  앞뒤 안 본다.  

깬 후에 더 기분나쁜 꿈이 있다.  꿈은 잊었어도 
그 끈적한 느낌만은 지금도 지울 수 없다. 

꿈속에선 늘 외롭다.  

예수가 그들을 보면 뭐라 말할까 미분류

오랜만에 올리는 블로그의 글이 이런 내용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슬퍼해야 할, 목놓아 통곡해야 할 이유는 분명한 것 같다. 가슴이 시리도록 분노한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다. 한국의 기독교가 '기득권'으로 남아있는 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달할 진정한 힘도, 명분도, 능력도 상실한 것이다. 세상이 세차게 뺨을 때리는 이 때, 닥치고 앉아 맞기를 바란다.

================================================


거듭되는 개신교 비판에는 이유가 있다. 정치와 권력과 재물에 눈이 먼 한국 주류 개신교의 모습은 이천년 전 예수를 못 박았던 사람들을 똑똑히 환기시킨다.

한국 주류 개신교가 미쳤다. 화장기 어린 은유가 아니다. 말 그대로 제 정신을 놓았다는 의미다. 배타적 태도에서 비롯된 해묵은 병리적 현상들과 별개로, 장로 출신 대통령 당선인을 정면에 내세운 최근 주류 교계의 행보는 누가 보더라도 성경 속 마귀 들린 자의 그것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문제는 눈을 띄우고 마귀를 쫓아줘야 할 믿음의 입술들이 바로 그 광기를 입에 문 주체라는 사실이다.

개신교 비판은 어제 오늘 밥상 국거리가 아니다. 최근에도 MBC의 시사프로그램이 거대 교회의 세습과 사유화, 과세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그때마다 무한반복된 메아리는 일부의 문제를 들어 전체를 호도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자정노력을 하고 있다는 변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어적 어휘구사는 은연중에 논점을 흐려놓는다. 바로 그 ‘일부 교회’가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주류 교회라는 맥락을 외면하는 것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기독교사회책임 등의 그룹과 대부분의 대형 교회가 여기 속한다. 부와 권력과 규모를 ‘신이 내려준 복’ 즈음으로 정당화하는 교회들이다. 교계는 주류를 일부라는 말로 어설프게 타자화하는 것보다 자정의 노력을 먼저 보여줘야 했다. 바뀐 건 없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개혁실천연대 등, 이른바 진보적 복음주의 그룹과 시민단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류 교회의 병폐는 나아질 기색이 없다. 오히려 이젠 노골적으로 정치 세력화를 향한 야심을 감추지 않는 형편이다. 구조적 문제라기보다, 그것이 종교적 신념인 탓에 더 고치기 힘들다.

그간 한국의 주류 개신교가 자행해온 부조리의 역사를 복기하는 일은 여간 괴로운 작업이 아니다. 그것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비뚤어진 논리, 가장 악의적인 이데올로기, 가장 첨예한 대립의 지점을 논하는 과정과 거의 대부분 겹쳐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개신교는 일찍부터 실질적인 국교로 기능해왔다. 교회가 광복 직후 반공주의, 자본주의를 종교적으로 교리화시킨 덕이다. 반공과 경제성장, 도덕적 정신무장의 당위성이 ‘신의 뜻’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다. 정권과 교회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전국의 교회에서 예배라는 이름으로 독재정권강화 정신교육이 이뤄졌다. 신이 그랬다는데 이길 장사 없다.

결국 주류 개신교는 돈과 성공을 향한 물욕과 결탁해 교세를 끊임없이 확장해 나갔다. 또한 특유의 배타성을 들어 믿음과 신념과 의견이 다른 자를 ‘틀린’ 자로 매도했는데, 이 같은 교리의 폭력성은 각종 일그러진 ‘주의’를 주의 이름으로 대중의 뇌리 깊숙이 심어 놓기에 이르렀다. 무의식을 점령했다. 상식으로 뚫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경직성,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완고함, 부조리를 세계의 원리로 쉽게 인정해버리는 무기력의 한숨 뒤에는 이런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작용하고 있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도를 펼쳐놓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따로 표기해보면 수많은 동그라미에 가려 한반도가 사라진다. 세계 최대 교회 50개 가운데 무려 23개를 보유한 초 강대 개신교 국가다. 엄청나게 성장했다. 좁은 땅에 성령이 역사하신 탓이라고 했지만, 실은 양적 성장을 향한 교회의 강력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오로지 높고 넓고 두터운 성전을 신의 이름으로 목 놓아 욕망했다. 이는 결국 과격한 세속화로 이어졌다. 미디어를 통해 밝혀졌듯이 대형 교회의 목사들은 각종 면세혜택을 누리면서 엄청난 부를 쌓고, 교회를 사유화하고, 세습하고, 신도의 돈을 횡령하고,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투기를 일삼았다. 소득세를 냈느냐 안 냈느냐를 가지고 말이 많은데, 냈다고 해도 애초 소득이 얼마고 그걸 어디 어떻게 썼는지 밝히지 않다 보니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가 없다. 모든 과정은 조금도 투명하지 않았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검은 돈이 헌금의 탈을 쓰고 교회와 개신교 사학재단을 경유해 암암리에 세탁됐다. 종교 헌금은 추적이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기업인데, 매우 반자본주의적인 토양 위의 기업인 셈이다.

부자 교회, 부자 목사에 대한 주류 개신교의 입장은 명료하다.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는 MBC의 비판적 보도를 의식한 듯 1월 27일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 예수 믿는 사람은 판자촌에 살아야 한다(는 말). 사탄이 하는 거짓말인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거부였고 이삭도 거부였고 야곱도 거부였습니다.” 주장의 수준을 따지기 이전에, 예수는 목수였다. 판자촌에 살라고 한 사람도 없었다. 이에 앞서 작년 1월에는 같은 자리에서 홍정식 목사(하베스트샬롬교회)가 “예수님은 가난하지 않았다. 예수님과 요셉은 가구를 잘 만들었다. 그래서 많이 팔렸을 것이다. 더군다나 치유 사역을 했기에 헌금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가난은 저주다. 부의 옷을 입어야 한다. 지금까지 순복음교회는 잘해왔다”는 눈물의 신앙 간증을 털어놓기도 했다. 사회적 약자를,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라는 원론적 가치마저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상식에 반한다. 하지만 교인들에게는 상식처럼 보인다. 신의 이름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부를 탐닉하고 십일조를 강요하는 주류 교회의 태도는, 그게 교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십일조 헌금만 제대로 내면 천국이 보장돼 있는데 그걸 제대로 못해 문제라고 말한다. 수입의 십분의 일을 교회에 헌납하는, 부자가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마법의 십일조는 오직 대한민국에만 잔존해 있는 헌금 양식이다. 십일조는 모세 시대의 율법이다. 종종 이단으로 취급되는 미국의 오순절 교회만 제외하면, 전 세계 모든 교회가 수백 년 전 근대화 과정을 거쳐 폐지한 제도다. 물론 십일조의 당위성은 교리적 해석의 몫이다. 문제는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이냐다. 최소한의 투명성과 땅의 규칙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그 내역은 당연히 신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돼야 마땅하다. 교회는 일부 목사의 소유물이 아니고, 헌금은 사적 재산으로 운용될 수 없다.

대한민국을 가로지르고 세로지르고 아래위로 나누는 이 거대한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현상과 사유의 지점은 따로 있다. 왜, 지금 이 시점이냐는 질문이다. 개신교가 사람들의 입에 유독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노무현 정권 들어서다. 한 손에 십자가를, 다른 손에 성조기를 든 사람들이 광장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극단적인 배타성과 친미주의에서 비롯된 교회 내부의 문제의식이 공적 발언의 형태로 세상 밖에 터져 나왔다. 정확히 말해, 그것은 징후였다. 주류 개신교회의 정치세력화가 급속하게 진전되면서 현실의 표피를 뚫고 도드라진 현상이다. 배경의 중심에는 교계 뉴라이트 세력인 이른바 기독교사회책임, 그리고 오랫동안 현실 정치에 미온적이었던 한기총이 있다. 이들은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비기독교인인 조갑제 월간조선 사장과 연대할 정도로) 상당히 급진적인 정치적 행보를 거듭해 왔다.

아닌 게 아니라 꽤 결실을 맺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대통령 인수위의 인수위원 24명 중 16.7 퍼센트인 4명이 소망교회 출신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출석하는 교회다. 특히 인수위원장, 기획조정위원, 경제1분과 간사 등을 비롯한 핵심층이 소망교회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정치세력화를 꿈꾸는 교계의 결실이라 할 만하다. 보다 최신 결과물은 사랑실천당(가칭)의 창당이다. 사랑실천당은 지난 1월 24일 발기인대회를 갖고 본격적인 창당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사회 일각에서 친북반미 사상을 가진 좌파들이 들고 일어나 난동을 부리며 사회를 혼란시키고 국가를 존폐의 위기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랑실천당의 전광훈 목사는 청교도영성훈련원에서 다음과 같은 일장연설을 내뱉었다. “사학법도 법이라고, 동성연애법도 법이라고 만들었냐. 국회의원 개새끼들, 왜 잠자는 목사들의 코털을 건드나. (중략) 국회를 100프로 점령하고 299명 다 채워서 예수 안 믿는 놈은 감방에서 5년, 얼마나 좋아. 내가 군사독재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생각이 보통 독재가 아니다. (중략) 끝까지 예수 안 믿는다고 하면 섬을 하나 정해놓고 중들을 집어넣어 헬리콥터로 컵라면만 떨어뜨리자. 예수도 안 믿는 인간들이 왜 살아.” 한기총의 신임 대표회장인 엄신형 목사(뉴라이트 계열이다)는 금란교회 초청회 자리에서 사랑실천당 창당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한기총이 앞장서서 목숨 걸겠다. 다음에는 예수 믿지 않으면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안 된다”고 말했다. 한기총의 대표회장 선거는 현재 금권, 비리 선거였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엄청난 배타성과 권력욕에서 비롯된 분열증이다. 주류 교회의 이 같은 폭력성은 무분별한 선교활동으로 이어져 아프간 피랍사태를 자초했고, “성경에 노조가 없다”는 궤변을 입에 문 이랜드의 비정규직 사태를 몰고와 국민적 공분을 샀다. 상황을 종합해보건대, 한국 주류 개신교가 용서와 화합, 사랑의 교회라는 증거는 어디서도 찾기 어렵다. 그보다는 입으로 사랑을 말하고 손으로 증오를 실천한다는 게 정확한 묘사다. 이들은 “사찰을 무너뜨려 달라”며 예수의 이름으로 비명인지 기도인지 모를 분노를 내뿜고(부산 BEXCO에서 열린 ‘Again 1907 in Busan’ 행사 중), 이라크 전쟁의 살풍경을 십자군 원정에 공공연히 비유하는가 하면, 인도네시아 쓰나미 피해를 이교도들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자초한 재해라고 주장하고(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가르치는 민중 교회를 “자정해야” 한다고 말한다(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상임총무 정재규 목사).

예수는 그의 말과 행동이 하늘에 머물러 있지 않고 땅 위에 굳건했기 때문에 칭송받았다. 그러나 한국의 주류 교회는 하늘의 논리를 빙자해 땅 위에 금으로 만든 바벨탑을 쌓고 있다. 예수의 정신은 실종됐다. 신약 속 예수는 도둑, 여자, 병들고 가난한 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살다가 정치범으로 몰려 죽었다. 그 예수가 지금 한국의 주류 교회를 목격한다면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예루살렘의 외적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압도돼 그 안의 제사장과 서기관들의 비리를 간파하지 못하는 제자를 보고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가 이 큰 건물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마가복음 13:1-2).”

이 땅의 주류 교회에 지금 당장 절실한 건 더 큰 성전도 정당도 보수정권도 아니다. 영적 두려움이다.

허지웅 (GQ 3월호)

Daily Apps - Skitch Mac

ComicLife로 유명한 PLASQ사의 또 다른 히트작 Skitch는 그들의 모토대로 Snap, Draw, Share, 즉, 찍고, 그리고, 공유하기에 가장 맥스러운(!) 룩앤필을 제공하는 탁월한 드로잉 어플이다. 맥의 내장 iSight를 이용하여 즉석에서 스냅샷을 찍거나 기존의 iPhoto 라이브러리에서 적당한 사진을 가져온 후 마치 마커나 매직으로 그리듯이 마음껏 그림을 그린다. 다른 사람들과 이 그림을 공유하고 싶을 때에는 skitch 사용자를 위한 myskitch.com 이나 dot Mac 등으로 '버튼' 하나만 살짝 누름으로써 그림을 업로딩하여 공유할 수 있다. 2008년 6월 현재 베타 테스트중. 베타 테스팅에 참여하고 싶은 유저들은 여기를 누르시길...







1 2 3 4 5 6 7 8 9 10 다음